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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최초, 특허 출원 시 유전자원 원산지 공개를 의무화하다
- 덴마크 이야기특허 유효성과 제재를 분리한 덴마크 특허법령(시행규칙 제3조)과 형법 제163조의 연계 구조
케냐 호수의 미생물과 효소 특허 - 덴마크를 흔든 '생물해적' 논쟁
1990년대 초, 영국 연구진은 아프리카 케냐의 강알칼리성 소다호수인 보고리아 호수(Lake Bogoria) 주변 간헐천에서 극한의 환경을 견뎌내는 희귀 극한미생물(Extremophiles)을 분리·채집했다. 이 미생물 속에는 알칼리 상태에서도 섬유소를 분해하는 강력한 효소가 숨어 있었다.
이 미생물 유전자원은 이후 덴마크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산업용 효소 기업인 노보자임스(Novozymes) 및 다국적 바이오 기업들에 전달되었다. 이들은 해당 미생물 유래 셀룰라아제(Cellulase) 효소를 개발하여 특허를 출원했고, 이는 직물을 마모시켜 빈티지 느낌을 내는 ‘스톤워싱(Stonewashed) 청바지’ 제조 공정에 혁신을 일으키며 글로벌 시장에서 수억 달러 규모의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2004년경, 케냐 야생동물청(KWS)과 현지 엔도로이스(Endorois) 원주민 사회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케냐 측은 "당시 학술 연구 목적으로 채집 허가를 받았던 미생물이 케냐 정부의 사전통고승인(PIC)이나 이익공유에 관한 상호합의조건(MAT)도 없이 다국적 기업에 무단 양도되어 상업적 독점 특허로 둔갑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해당 자원이 수 세기 동안 보고리아 호수 일대를 지켜온 토착 원주민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국제 시민단체(NGO)들까지 가세해 "선진국 다국적 기업이 개도국의 유전자원을 약탈한 대표적인 생물해적(Biopiracy) 행위"라며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이 사건은 덴마크 사회와 바이오 산업계 전체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결국 노보자임스는 케냐 KWS와 공식적인 접근 및 이익공유(ABS) 계약을 체결하고 연구 지원과 로열티를 지급하는 모범 사례로 전환했지만, 이 사건을 전후로 덴마크 입법부는 매우 중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자국 바이오 산업의 핵심인 특허권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국제사회에서 유전자원 약탈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특허 제도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EU 최초로 출처공개를 명문화한 덴마크 - 특허법령의 선제적 도입
지난 302호에서 살펴본 유럽특허청(EPO)은 유럽특허협약(EPC) 체계상 출원인에게 유전자원의 출처 공개를 요구하지 않았다. 특허청 심사관은 오직 신규성과 진보성만 볼 뿐, 나고야의정서 준수 여부는 묻지 않았다.
그러나 자국 내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의 활발한 R&D와 해외 자원 분쟁을 목격한 덴마크는 달랐다.
덴마크는 2000년, EU 생명공학지침(Directive 98/44/EC)을 국내법으로 수용하면서 EU 회원국 중 가장 선제적으로 국내 특허법령에 '생물유전자원의 지리적 원산지(Geographical Origin) 공개 의무'를 신설했다.
법적 체계「덴마크 특허법(Consolidated Patents Act)」 제26조 등의 위임 규정 및 「특허시행규칙(Order on Patents / Patentbekendtgørelsen)」 제3조 제4항
핵심 요건1. 발명이 생물소재(Biological Material)에 관련되거나 이를 이용하는 경우, 출원인은 알고 있는 한 지리적 원산국(Country of Origin)을 출원서에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2. 출원인이 원산국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공급원(Source)을 밝혀야 하며, 공급원조차 모른다면 "출처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Unknown)"을 출원서에 정식으로 명시해야 한다.
DKPTO 심사관의 확인 범위: "ABS 적법성 심사"가 아닌 "단순 기재 여부 확인"
그렇다면 덴마크 특허상표청(DKPTO) 심사관은 원산지 국가의 사전통고승인(PIC)이나 상호합의조건(MAT) 이행 계약서까지 징구하여 특허를 거절시킬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DKPTO의 심사 실무는 철저히 '형식적 기재 여부'만을 확인하는 데 한정된다. 출원서 양식에 원산지가 적혀 있는지, 혹은 모른다는 진술이 존재하는지만 볼 뿐, 나고야의정서 적법성 여부를 파고들어 특허 거절이유를 발행하지는 않는다.
특허 유효성은 보호하되, 거짓말은 형법으로 처벌한다.
덴마크 제도의 진정한 본질은 바로 특허의 유효성과 사법적 제재의 분리에 있다.
덴마크 특허시행규칙 제3조 제5항은 원산지 정보의 결여나 부지(Unknown) 진술이 특허 심사 처리나 이미 등록된 특허권의 유효성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출처 기재에 하자가 있더라도 특허가 취소되거나 무효화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출처를 거짓으로 꾸며내도 안전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특허청 대신 덴마크 형법 제163조(공공기관에 대한 허위진술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원산지를 알면서도 복잡한 검증을 피하려고 거짓으로 "모른다"고 적거나 허위 국가를 기재한 사실이 적발되면, DKPTO가 특허를 박탈하는 대신 사법당국이 공문서 허위진술에 따른 벌금형을 부과한다.
특허권은 안전하게 지켜주되, 거짓 진술을 한 출원인은 형사적으로 단죄하는 엄격한 이중 구조라 할 수 있다.
"특허권은 유지되나 벌금형에 처하는 상황"을 피하는 기업 실무 가이드
이러한 독특한 법제 속에서 덴마크 진출을 준비하는 국내 기업 IP 담당자가 챙겨야 할 실무 포인트는 명확하다.
소재 도입 단계부터 물질이전계약서(MTA)나 분양증명서 등 원천 이력을 연구노트에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 불가피하게 원산지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공급처 질의 내역 등 선량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할 객관적 조사 기록을 남겨두어야 형법상 허위진술 시비를 피할 수 있다.
아울러 DKPTO 출원서에 기재한 원산지 정보는 향후 EU 완제품 출시 단계에서 거쳐야 할 'EU ABS 규칙(Regulation 511/2014) 상의 실사 선언(DECLARE)' 내용과도 일치해야 불필요한 행정 제재를 예방할 수 있다.
한 줄 요약덴마크는 바이오 기업의 특허 유효성을 철저히 보장해 주는 대신(특허 무효 배제), 출원서의 허위 진술에 대해서는 덴마크 형법(제163조)을 통해 형사 벌금형으로 다스린다. 덴마크 출원 시에는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적되, 객관적 조사 노력의 증거를 남기는 정직한 서류 작성"이 최선의 IP 전략이다.
- [공식 법령 원문]
- [공식 설명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