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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법에 빗장이 없는 나라 — 미국 이야기연방특허법(35 U.S.C.), 별도의 출처공개 규정이 없는 이유와 실무적 함정
멕시코 시장에서 산 콩 한 봉지가 특허가 되다
1994년, 미국 콜로라도의 한 종자회사 대표 래리 프록터(Larry Proctor)는 멕시코 소노라주의 시장에서 노란 콩 한 봉지를 샀다. 멕시코에서 수백 년간 재배되며 '마야코바(Mayocoba)' 또는 '아수프라도(Azufrado)'라 불리던 토종 작물이었다.
프록터는 이 콩을 몇 년간 선별 재배한 후 '엔올라(Enola)'라는 이름을 붙여 1999년 미국 특허(제5,894,079호)를 등록받았다.
특허 등록 직후, 그는 미국에 마야코바 콩을 수출하던 무역업체들에 파운드당 6센트의 로열티를 요구하고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로 인해 멕시코 농가 2만 2천 가구가 첫해에만 대미 수출 수입의 90%를 잃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국제열대농업센터(CIAT)가 재심사를 청구했고, 유전자 분석 결과 엔올라 콩은 기존 보관 품종들과 유전적으로 동일함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소송 끝에 연방항소법원에서 특허가 최종 무효화되기까지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주목할 점미국 특허청(USPTO) 심사 과정에서는 이 콩이 멕시코산인지, 농민의 동의를 받았는지는 단 한 번도 문제되지 않았다. 특허가 취소된 이유는 오직 하나, "기존 품종과 동일하다(신규성 결여)"는 이유뿐이었다. 즉, 미국 특허법에는 "이 자원이 어디서 왔는지 밝히라"고 요구하는 빗장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왜 미국 특허법에는 출처공개 조항이 없을까?
이러한 공백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미국의 일관된 정책 기조에서 비롯되었다.
- 생물다양성협약(CBD) 미비준: 1992년 리우 정상회의 채택 후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까지 마쳤으나, 상원 본회의 표결이 무산되면서 미국은 전 세계 UN 회원국 중 유일한 CBD 미비준국으로 남아 있다.
- 나고야의정서 미가입: 모태 조약인 CBD를 비준하지 않았으므로, 나고야의정서(2010)상의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공유(ABS) 의무 역시 미국 내에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
앞서 살펴본 중국, 브라질, 인도, 필리핀과 달리 미국 특허출원 시 출처공개 관련 서류를 제출할 법적 근거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미국 안에서는 갈등이 없었을까? — 옐로스톤의 뜨거운 물
1960년대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70℃ 온천수에서 발견된 미생물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Thermus aquaticus)'.
여기서 추출한 내열성 효소는 훗날 유전자 진단과 분자생물학의 혁명을 일으킨 'Taq 폴리머라아제(Taq polymerase)'가 되었다. 관련 특허는 글로벌 제약사 로슈(Roche)로 넘어가 막대한 상업적 수익(2022년 한 해 관련 매출 약 54억 달러)을 올렸지만, 자원의 서식지였던 옐로스톤 공원과 와이오밍주는 어떤 이익도 배분받지 못했다.
뒤늦게 1997년 국립공원관리청(NPS)은 생명공학기업 다이버사(Diversa)와 '공동연구개발협약'을 체결해 연간 약 2만 달러의 지급과 함께, 향후 상업화 성공 시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그러자 환경단체 에드먼즈 연구소(Edmonds Institute) 등이 "국립공원의 생물자원을 민간기업에 넘기는 협약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체결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Edmonds Institute v. Babbitt, 1998), 법원은 국가환경정책법(NEPA) 위반을 이유로 협약 이행을 중단시켰다.
핵심 포인트이 모든 분쟁은 '특허법'이 아니라 '국립공원 관리법령 및 행정소송'을 통해 다뤄졌다. 지금도 미국 심사관은 PCR 관련 후속 특허를 심사할 때 원료가 옐로스톤 온천에서 채취되었는지 전혀 묻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미국의 독자 노선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회의에서 미국은 줄곧 출처공개 의무화에 반대해 왔다.
"특허 심사가 지연되고 법적 불확실성이 커지면 바이오 혁신이 저해된다"는 것이 미국의 오랜 논리였다.
2024년 5월, WIPO에서 역사적인 '지식재산·유전자원·관련 전통지식 조약'이 극적으로 타결되었음에도 미국은 여전히 불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업 담당자 및 연구자를 위한 실무 제언
미국 특허청(USPTO)에 출원하는 한국 바이오·제약 기업이라면 다음 두 가지를 반드시 구별하여 전략을 세워야한다.
- 미국 출원 시 절차적 부담은 '최소’
미국 특허청에는 유전자원 출처공개서나 ABS 승인 서류를 낼 필요가 없다. 절차적으로는 가장 간편하다. - 원산지 국가의 리스크는 '별개’
미국 특허 등록이 원산지 법률 위반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해외 유전자원(예: 브라질, 인도, 중국 등)을 적법한 사전통고승인(PIC)과 상호합의조건(MAT) 없이 반출해 미국 특허를 등록받았더라도, 원산지 국가로부터 형사처벌, 과태료, 수출입 금지 등의 제재를 받을 위험은 그대로 남는다. - 선행기술 은폐 주의 (미국 Rule 56 정보개시의무)
출처 자체는 비밀로 할 수 있더라도, 엔올라 콩 사례처럼 해당 천연물·품종이 현지에 이미 널리 알려져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공지기술)을 알고도 숨긴 채 독점권을 주장하면 추후 특허가 무효화되거나 불공정행위(Inequitable Conduct)로 비화될 수 있다.
미국 특허청의 침묵이 곧 전 세계 어디서나 합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글로벌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기업일수록 미국 특허의 '자유로움' 뒤에 가려진 '원산지 컴플라이언스'를 함께 점검해야한다.
- [법령 원문]
- [해설 및 배경자료]